[STORY]건축으로서의 기지 / SPACE Magazine

2021-08-14


기지는 서대문구 연희대로와 다세대 주택가 사이에 위치하고 상업시설, 갤러리, 오피스 그리고 다가구주택, 총 네 가지 프로그램을 담고 있다. 각각의 프로그램은 그 특성에 맞는 공간구성을 가져야 하며, 외부 환경과 각기 다른 관계를 맺어야 했다. 상업시설은 접근성이 높고 시인성이 좋아야 했으며, 갤러리는 프라이빗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담백한 공간이면서 외부의 시선이 차단되어야 했고, 오피스는 업무가 가능한 차분한 공간이어야 했고, 주택은 세대 사이에 중정을 가지고 내부에서 뷰를 확보하며 답답하지 않아야 했다. 기지의 프로그램들은 이처럼 서로 다른 특성 때문에 수직적으로 나누어져 적층 배치되었다.


건축주는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한국 단색화의 대표 화가 박서보로, 그의 작품 ‘묘법’ 시리즈에서 반복과 중첩을 통해 단순함 속의 깊이감, 단순함 속의 미세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박서보 화백은 건물에 본인의 예술세계가 표현되지 않아도 된다고 요청했으나, 그의 작품세계처럼 단순함, 깊이감 그리고 미세한 변화가 숨쉬는 건물을 만들고자 했다. 

ⓒ Sergio Pirrone

1층의 갤러리는 주로 작품 전시와 리셉션으로 사용되는 곳으로 용도에 맞게 공간 변화가 가능해야 했다. 

이를 위해 콘크리트 필드 튜브(CFT)와 포스트 텐션(PT) 공법을 사용해 수직부재 크기를 최소화하고, 장 스팬의 캔틸레버로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은 전면으로 외부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원은 그림 감상에 방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단순하게 구성했다. 이끼와 돌 그리고 마사토만을 이용해 정적이고 담백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한 가족 3세대가 거주하는 상층 주택 부분은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면서 외부 공간을 공유할 수 있도록 가구들을 수평적, 수직적으로 분할 배치하고 그 중앙에 중정을 두었다. 

ⓒ Sergio Pirrone

프로그램들의 상이한 특성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외장재를 사용하는 것보다, 여러 특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단일 외피를 계획했다. 특히 외피는 화가 박서보의 근작에서 나타나는 ‘공기색’을 차용했다. 공기색은 맑고 밝은 푸른색으로 빛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깊이감을 만드는 색으로 화가 박서보는 “이 색을 볼 때 호흡이 더 잘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공기색처럼 빛과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는 외피를 만들고자 했다. 알루미늄 판재를 타공하고 절곡하여 이어 붙임으로써 빛과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외장재를 개발했다. 외피의 원형 구멍들은 수직 방향으로 그 크기가 변하는데, 그 지름이 가장 큰 눈높이에서는 70%의 개구율이 확보된다. 개구율은 눈높이에서 상하부로 갈수록 줄어들어 보는 각도에 따라 막혀 보이기도 하고 트여 보이기도 한다. 또 이 타공 외피는 외부에서 잘 들여다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는 비교적 잘 내다보여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동시에 바람을 통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타공판들은 둔각으로 절곡되어 연결되는데, 이 접힘이 자체적인 구조적 강성을 가지게 되면서 타공판들을 지지하는 고정 부속 자재의 양을 최소화시킨다. 또한 이 접힌 면들이 보는 각도에 따라 반사, 통과, 겹침 등의 다양한 빛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입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내부의 육중한 매스와 중첩되어 시시각각 다채로운 깊이감을 만든다.

ⓒ Sergio Pirrone





  • 설계 / 조병수건축연구소(조병수)
  • 설계담당 / 김민영, 정윤석
  • 위치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24길 9-2
  • 용도 / 근린생활시설, 다가구주택
  • 대지면적 / 773.2㎡ 건축면적 / 398.74㎡ 연면적 / 1997.21㎡
  • 규모 / 지상 4층, 지하 2층
  • 주차 / 13대
  • 높이 / 15.96m 건폐율 / 51.57% 용적률 / 143.28%
  • 구조 / 철근콘크리트조, 콘크리트 필드 튜브, 포스트 텐션
  • 외부마감 / 불소수지도장 알루미늄 타공패널, 송판노출콘크리트
  • 내부마감 / 방화석고 위 수성페인트, 송판노출콘크리트
  • 구조설계 / 동양구조
  • 기계,전기설계 / 하나기연
  • 시공 / 씨앤오건설(주)
  • 설계기간 2016. 6. ~ 2017. 2.
  • 시공기간 2016. 12. ~ 2018. 6.
  • 건축주 / 박서보



조병수는 1994년 건축연구소를 개소한 이후, ‘경험과 인식’, ‘존재하는 것, 존재했던 것’,‘ㅡ자집과 ㄱ자집’, ‘현대적 버내큘러’, ‘유기성과 추상성’ 등의 테마를 가지고 활발히 활동해왔다. 하버드대, 독일 국립대 카이저스라우테른과 연세대, 몬태나대 등을 포함한 여러 대학에서 설계와 이론을 가르친 바 있으며 2014년에는 덴마크 오르후스 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하였다. 대표작으로는 키스와이어 센터, 키스와이어 F1963, 남해 리니어 스위트 호텔, 퀸마마 마켓, ㅁ자 집, 트윈트리 프로젝트, ‘땅집’ 등이 있으며, 한국건축가협회상, 아천상, 김수근 문화상, 다수의 미국건축가 협회상 등을 수상했다.